양재역, 취준생의 아픔

by - 목요일, 3월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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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으로 붐비는 양재역 사거리였다. 짙은 검정색 정장에, 안에는 하얀 셔츠를 입은 말쑥한 신입사원 같은 여성이 내 차에 급하게 탔다. 차에 타자마자 “아저씨, 삼호물산요. 빨리요!” 하며 헉헉댔다. 이쪽 길에 익숙했던 나는 잽싸게 차를 돌리며, “어이구, 엄청 급하신 모양이에요.” 하고 속없는 소리를 했다. 아직 숨차하던 그가, “오늘 면접 있는데,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아저씨, 빨리!” 했다. “저런!” 취업 면접이었다. 이쯤되면 나도 모르게 급해진다.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시간 맞춰 도착할테니까 숨부터 가라앉히세요.” 했다. 뉴스나 신문은 청년 실업의 심각함을 매일 같이 전한다. 면접도 오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면접까지 오느라 고생했겠어요. 긴장 푸시고 면접 잘 보고 꼭 붙으세요!” 오지랖인줄 알지만 격려하고 싶었다. 그가 안심이다 싶은지 가볍게 웃으며, “고마워요, 아저씨!”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가 막히자 금새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걱정마세요! 여기만 지나면 금방이에요.” 면접을 앞둔 사람은 좌불안석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요…” 하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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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학을 졸업한지는 벌써 수 년이 되었다. 몇 해째 취업 재수생이었다. 해를 넘길 때마다 불안했단다. 입사 원서를 넣으며 “알바”로 버텼다. 딱히 대기업을 바라지도 않았다. 어떤 데는 서류에서 어떤 데는 면접에서 떨어지다 결국 오늘까지 왔다. 그러니 ‘또 어떻게 될까, 면접 한 번 더 본 걸로 끝나나…’ 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불안감이 있었다. 한 번은 면접관이 남자 친구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때는 남자 친구가 있었으니 ‘있다’ 하고 답했다. 그랬더니 면접관이 ‘그러면 결혼을 할거냐’ 하고 되물었고, 자기는 ‘결혼을 하네 마네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고만 답했다. 그리고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여자는 다 결혼하더라.” 면접은 그렇게 끝났고, 그는 떨어졌다. 떨어진 이유를 한참을 생각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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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 듣고, 화를 내더라도 그의 기분에 동감하고 응원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회사는 합격이 됐더라도 않다니시는 게 나았을 겁니다! 결혼하면 자르겠다는 소리잖아요.” 흥분한 나를 보고 그가 “그러네요, 아저씨!” 하며 맞장구 쳤다. 내 응원이 통했다. 멀지 않았던 목적지에 시간 안에 도착했다. 그가 내리며, “안전 운전하세요! 고마워요, 아저씨!” 하고는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웃는 모습을 보고 내가 다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얼마나 오래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일까. 아마 면접을 볼 때마다 생각나서 괴로웠겠구나. 속으로 별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세상은 다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에서, “여자라서 어쩔 수 없어!” 하고 자책했을지 모른다. 사실, 불평등과 차별과 억압이 세상의 이치라도 되는냥 하루 하루가 천연덕스럽게 지난다. 그러니 포기를 부르는 이런 말들이 “위로”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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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면접 시 면접관들이 입사 기준과 상관 없는 이야기로 지원자를 괴롭힌다는 소식이 자주 들렸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겠지만, 청년 실업이 늘어나면서 눈에 띤 일이다. 지원자가 넘쳐나니 기업이 오만해진 탓일 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열 명 중 거의 일곱 명이 면접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고 세 명꼴로 반말, 외모, 부모 직업, 출신 지역, 이성 친구 유무, 결혼∙임신 계획 따위의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이 “공부 안 하고 뭐 했냐?”, “성적이 낮은데 업무를 이해할 수 있겠나?” “보수냐 진보냐” 하고 묻거나, 심지어 “목소리가 왜 그러냐, 노래는 잘 하겠네. 노래 해봐” 하는 자도 있다. 여성 지원자에게는 “전에 일하던 여직원은 생리통이 심했는데, 생리통이 심한가?”, “결혼하고 애 낳을 때까지만 다닐건가?” 하고 묻기도 했다. 방금 전 내린 내 승객과 같은 꼴이다. 
하지만 이런 모욕을 당해도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참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어떤 사람은 그 기업을 보이콧하기도 한다. ‘소심한 복수’지만 합격해놓고도 가지 않다니 오죽했으면. 이런 모욕감은 심한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계속되는 탈락 등으로 무기력증, 짜증, 대인기피,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그래서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자살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20∙30대 청년층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한 해 대략 오십만 명도 더 되는 사람이 대학을 졸업한다. 이중 취업하는 사람은 열 명 중 네 명도 안 된다. 이 네 명도 거의 평균 1년 걸려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또 다른 오십만 명이 졸업한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취업률은 낮아지고 있고, 취업에 성공하는 기간도 길어진다. 물론 이런 상황에도, 가까스로 입사했는데도 때려치우지 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업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이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막말을 하고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오만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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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승객을 위해 대신 화를 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사회적으로 많은 노력들이 있었던 것 같다. “청춘”에 대한 작은 위로와 격려, “청년”이라는 이름을 딴 슬로건이며 각종 정책들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정말 취업준비생들을 위로했을까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 언 발에 오줌 누기같다. 당장에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짧은 생각으로 한 일이 오히려 화를 더 키우는 일같다는 말이다. 청춘 예찬론은 그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백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에게 일어난 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을 예찬하고 청년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저자 나름의 성찰을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곧 청년들을 향해 “열심히 하면 된다”, “눈을 낮춰라” 따위의 지배층들의 태도와 이 책이 닮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저자의 시선 역시 “꼰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급기야 책을 쓴 저자는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하고 항변했다. 
이 사태의 배경에는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자신들의 고통을 이용해 현실을 호도하는 자들에게도 마땅히 분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 작가는 남탓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남이 되는 기업과 정치인들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기업 이미지 포장에, 정부 정책에 “청춘”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예컨대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이 괴상한 임금제가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광고했다. 실제로는 원래 있던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기업을 위한 정책 강행에, 노동자와 취업준비생을 이간질하며 “청춘”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옳은 소리였다. 이에 반해 정부와 기업은 그렇게 “청춘, 청춘”하고는 정작 주는 일자리가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하물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중동에 가라”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청년들이 이들을 향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나는 그 분노에 연대하고 싶다. 그나저나 내 승객이었던 그가 취업에 성공했을까 궁금하다. 

참고 문헌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존중하는 채용 문화 마련을 위한 <청년 면접 실태 조사>.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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