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한 여성 노동자의 성형 수술 고민

by - 화요일, 3월 21, 2017

강남 일대에 널린 성형병원 광고. 외모를 통한 여성 억압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 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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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서울 중심가 어디라도 사람들이 많다. 그중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강남대로를 꼽겠다. 주말이면 이곳 일대에는 쇼핑과 데이트를 겸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엔 외국인도 많다. 물론 쇼핑과 데이트가 다는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곳에는 거의 없고 이곳에만 몰려있는 것 하나가 있다. 여성을 미인으로 만들어준다는 성형병원이다. 이 일대의 신사동, 논현동, 청담동에만 성형병원이 300개가 넘는다(2015년). 같은 강남구의 다른 동네에 한두 곳이 있고 강북 쪽에도 얼마  없는 것에 비하면, 이곳은 압도적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의료 관광 온 외국인도 늘었다. 
해가 좋은 어느 주말 오후, 내 택시에 강남대로 한복판 신논현역 근처에서 홍대로 가자고 한 여성이 탔다. 그 사람도 마침 이 동네 성형병원 중 한 곳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한 평범한 여성 노동자의, 성형 수술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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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여덟인 이 여성은 평택에서 한 대기업 전자 제품 공장을 다니는 노동자였다. 주말이 되어 이곳 강남까지 와 성형 수술 상담을 방금 마쳤다. 상담은 주로 눈을 크게 하는 수술 관련이었다. 
성형을 선택한 것은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다. 작업장의 동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모도 거들었다. 
선글라스를 썼던 그에게 나는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따위의 한가한 소리를 했다. 그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하면서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이미 상담을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은 그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사실, 그가 외모 때문에 얻는 스트레스는 다른 데서 시작됐다. 몸무게였다. 중간 키에 야위어 보였지만 얼마전까지는 달랐다. 주변에서 뚱뚱하다고 놀렸다. 그게 싫어 일곱 달 동안 살인적 수준으로 다이어트를 해, 3-40킬로그램이나 뺐다. 그런데, 몸무게를 빼니 이제 눈 크기가 입에 오르내렸다. 눈만 좀 크면 더 예쁘겠다는 것이었다. 
몸무게를 줄이니 이제 성형을 해야하나 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고 성형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외모에 대한 주변의 말들이 싫었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면 내 원래 모습을 좋아해주어야 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기왕이면 다홍치마’인 듯, 수술을 쉽게 이야기했다. 이미 비슷한 수술을 한 적 있는 지인은 자신이 수술한 병원을 추천하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 병원이 오늘 다녀온 병원이었다. 
상담을 받은 지금, 성형을 꼭 해야하는지 그는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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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성형수술을 하는 나라다.(인구대비, 2011년 기준) 얼굴뿐만 아니라 가슴 등 다른 신체 부위를 포함하며, 수술적 방법이 아닌 “시술”도 있다. 이같은 미용 수/시술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여성이다. 
지하철, 버스, 인터넷 등등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린 성형 광고가 옷 광고 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광고 속에서는 ‘짙은 화장에 큰 눈, 작은 얼굴에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성’이 “당신도 나처럼 예뻐질 수 있어요” 하듯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홀린다. 부지불식간에 이제 성형은 쇼핑 보다는 좀 더 진중한 선택의 문제가 된 듯하다. 내 택시 손님의 선택은 가족과 친구와의 고민의 결과였다. 물론 돈과 권력을 가진 여자들에게는  “사생활”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두고 여성을 포함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자는 본능적으로 아름답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가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강할 이유도 없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또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서로 다른 각 역사 시대에도, 그 추구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가꾸는 방식이었지 오늘날처럼 변형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30여 년 전만 해도 성형은 낯설고 집에서 알면 혼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독 지금 시대는 여성에게만 전 사회적으로, 외과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광고 모델 처럼 아름다워지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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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무엇보다 노동 시장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 특히 여성 억압의 현실과 관계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한다. 기업주가 노동 시장에서 값싸고 좋은 상품(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값싸고 좋은 상품(노동력)의 기준이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바로 임금과 외모다. 임금은 더 낮게 외모는 과도한 요구로. 임금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40%를 낮게 받는다. 이에 반해 외모 요구는 과도하다. 예컨대 상당한 회사들이 여성 노동자를 고용할 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미모와 지성”을 요구한다. 어느 정신 나간 회사는 여성의 가슴 크기 “C 컵”을 조건으로 내놓았다. 많은 기업들이 여성 직원을 “꽃, 꽃” 해대며 화장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교양” 수준이다. 뚱뚱하고 눈이 작았던 내 손님은 이런 사회에서 천대받는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지난 10년 경제 위기로 (노동시장의) 경쟁 과열이 상황을 더욱 악화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은 높아졌다. 청중장년 모든 연령 층에서 실업이 역대급이다. 단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중 10명 중 3명 꼴로 실업자 신세다.(2014년)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남녀에게 동등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다. 예컨대 대학 졸업자 중 남자 취업률이 10명 중 약 9명이라면, 여성은 10명 중 6명에 지나지 않다.(2010년) 이런 압력들이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여성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를테면 여성이 말 그대로, 제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여대생의 10명 중 3명꼴로 미용 성형을 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2016년) 결국 이같은 외모 요구에 덧붙여 경제 위기로 인한 경쟁 과열의 분위기가, 논현동의 내 손님을 성형 병원 상담 데스크 앞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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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닿기 전, 그 손님이 선글라스를 벗고 내게 “어때요?” 하고 물으며 자신의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행동에 흠칫 놀랐지만, 그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리라. 그의 눈은 작고 얇았다. 그렇다고 딱히 못난 눈도 아니었다. 당연히 생활에 지장도 없어 보였다. 나는 “예쁜데요” 하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 대답이 그에게 힘이 되기를 바랐다. 어땠을까?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의 모습 그대로 가꾸기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 논현동 성형병원을 들렀다 온 그 여성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까지도 “성형”이 낯설었다. 그는 자신의 원래 모습에 더 익숙하고 그것을 사랑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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