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동, 할머니의 병원 길

by - 월요일, 3월 13, 2017

"쓰다 버린 유모차를 주어와 그에 기대며 종이와 빈병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살아가는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들 말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용문동 그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이런 사람이 이 나라에 130만 명도 더 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최저생계비 미만의 가구 소득으로 생활한다." 본문 중. 사진: 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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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뒤 졸음이 쏟아질 무렵, 용문시장 사거리 언저리였다. 주변엔 얼마전 완공한 고층 아파트가 깨끗했다. 덕분에 그 아래 그림자 속 주택 몇 채가 초라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빈 차' 등이 켜진 택시 한 대가 나오더니 내 옆을 지나쳤다. 그 길 끝에는 119 구급차가 분주했다. 갑자기 구급차 뒤에서 나온 구급대원 한 명이 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앞 택시도 있었는데 왜 하필 나를 부르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손짓을 따라 갔다. 가보니 왠 할머니를 가리키며 그분을 성애병원까지 모셔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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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병원은 여기서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쭉 가면 금방이었다. 차가 막혀서 문제지. 그보다 이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걱정이었다. 아슬아슬하신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가만 생각하니 빈 차로 내 옆을 지난 그 택시가 이 할머니를 태우지 않자 구급대원이 일부러 나를 부른 게 분명했다. 어떤 택시 기사는 이렇게 병약하고 연로한 노인을 피한다. 차에 노인 냄새가 배고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려서다. 아니나 다를까 원효대교 위를 달리는 데 할머니 몸에서 냄새가 났다. 여든을 훨씬 넘긴 이 할머니의 가난, 질병의 냄새였다. 나는 환기를 위해 차 유리창을 내리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할머니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당신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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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혼자 산 지 꽤 되었다. 흔히 말하는 독거노인이었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큰 병을 계속 앓았다. 그러다 얼마전 또 다른 병이 생겨, 늘 가던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안 그래도 무릎이 아프고 다리에 힘이 없는 데다 최근엔 허리까지 다쳐 걷지 못할 정도였다. 택시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미 먹고 있는 약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먹던 약은 하도 쎄서 속이 다 쓰리고 어떤 약은 약발도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약 기운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약을 타러 가야 했다. 사실 이런저런 약 기운 때문에 밥해 먹을 힘도, 병원 갈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으려면 죽이라도 해먹고 살았다. 그 밥심으로 조금 움직인다. 늙고 병들었어도 이 모두를 혼자 다 하고 있다.  
슬하에는 아들과 딸 하나씩 둘이 있긴했다. 모두 환갑을 넘었고 제 식구를 꾸려 서울에 산다. 하지만 같은 서울 살이여도 그 두 자식에게서 목소리라도 들은 건 벌써 몇 년 전 일이었다. 손주들한테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오늘 내일 사이 죽어도 내 몸뚱아리 하나 걷어줄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내셨다. 얼마 전에는 생신이었다. 혼자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매일 같이 아프지만 병원에 갈 때나 잠깐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다였다. 외롭다.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들때마다 내일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다.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가장 무섭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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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독거와 이 고된 삶의 속 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차 안에 찬 쉰 냄새와 외로움에 터져나온 거친 목소리를 통해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노년의 삶이 당신에게는 무척 끔찍하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는, 하물며 택시 기사마저 피하는, 가난과 고통의 삶임을 당신이 더 잘 알았다. 그런 삶을 붙잡고 달라질 기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차가 병원에 닿자 할머니가 내리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도와드리겠다며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고 부축했다. 할머니 몸이 종이처럼 가벼웠다. 부들부들 떠는 두 다리를 어렵게 한 걸음씩 옮겼다. 할머니가 몸을 세우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차비를 꺼내려했다. 나는 그 가벼운 손을 잡고 말리며, 병원비에 보태시라 했다. 할머니가 한사코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간호사에게 부축을 맡기고 냉큼 돌아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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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홀로 사는 칠순의 내 어머니가 겹쳤다. 아직 건강해서 장사라도 하며 혼자 먹고 사시는 정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노인들이 더 많다. 쓰다 버린 유모차를 주어와 그에 기대며 종이와 빈병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살아가는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들 말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용문동 그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이런 사람이 이 나라에 130만 명도 더 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최저생계비 미만의 가구 소득으로 생활한다. 동시에 가난 때문에 아니면 노화에 따른, 혹은 둘 다로 인해 병 두세 개는 끼고 산다. 이런 삶의 고통이 우울증으로, 심각하게는 자살로 이어진다. 7,80대 노인 자살율이 전체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까닭이다. 아침이 두려운 사람이 적지 않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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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하지만, 노인 빈곤이나 노인 자살이 OECD 국가 중 선두를 차지하는 한국이다. 이 나라 노인 복지가 형편 없는 탓이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정부가 너무 인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정부는 이들이 젊었을 때 나라 경제를 살리고 자기 가족은 스스로 부양하라며 이중의 고통을 강요했었다. 그러면서 여기서 나온 대부분의 부를 기업과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나이 들어 소득 없는 피부양의 처지로 전락하자, 정부는 복지를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공격하며 내팽개친다. 미안해하기는커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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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동 할머니가 지금쯤 건강하게 계시기를 바라지는 못하겠다. 처음 뵙던 그날도 이미 심각한 병을 앓던 중이었고, 거기에 새 병을 얻었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이미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음을 뜻했다. 걷기조차 힘든 것은 운동량이 극도로 적다는 소리였다. 그런 할머니가 여름은, 또 겨울은 어떻게 났겠는가. 할머니 역시 죽음을 가까이 느끼는 듯했다. 택시를 내리는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던 가벼움. 그 때문에 내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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