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동, "알바생"의 경우...

by - 화요일, 2월 28, 2017

(사진 출처: 프레시안. 2015년 4월 30일. 알바노조가 "알바생"이라는 단어를 쓰지말자며 언론중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나는 그 취지를 지지하며, 이 글에서는 " " 표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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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벽. 종로5가역 사거리에서였다. 저만치서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택시를 부르는 사람 앞에 차를 세웠다. 젊은 여성이었다. “죄송해요, 가까운 데 가는데…” 하며 차에 탔다. 불편해 하는 듯했다. 목소리에서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무릎 위에 올린 가방을 보니 두툼한 게 학생이다. ‘수업 끝나고 곧장 어디라도 다녀오는 건가? 취한 것 같지는 않는데…’ 하고 슬쩍 보니 화장기 없이, 멋이라곤 전혀 부리지 않았다.
그가 가자고 한 곳은 성균관대 뒤 명륜동 산길 위였다. 피곤한 목소리가 신경쓰였다. 괜히 친절한 척 물었다. “피곤하신 모양이에요?” 그랬더니, “예… 이제 알바가 끝나서요. 다른 때 같으면 택시 안 타는데 오늘은 피곤하네요...” 하고 간신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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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도 부리지 않은, 전공 책이라도 들었을 법한 가방 하나가 다인 여학생. 늦은 수업을 끝내고 이제야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마 일이라고 해야, 24시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가게일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학교를 다니며 일한다. 주말에 늦장 부리다 서둘러 내 택시를 탔던 다른 대학생들도 그랬다. 그들은 어디 카페, 어디 편의점에서 “주말 알바”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공부하느라 피곤할텐데, 주말에는 좀 쉬지 그래요.” 그러면, “쉬고 싶어요. 피곤해 죽겠어요. 그래도, 쉬는 날이라고 잠이나 자면 뭐해요, 돈도 없는데…” 하고 그들은 답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학원을 끊거나 학비에 보탤 거라고 답했다. 내 뒤의 손님이 바로 그런 “알바생”인지도 몰랐다. 밤 시간에 일한다는 것만 다를 뿐. 피곤한 모습이 안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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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명륜동 산길은 꾀나 험했다. 생각지도 못한 높은 언덕과 그 위로 빼곡히 들어선 오래된 집들. 그 사이 용케 찻길이 나있다. 차 댈 데라곤 없는 길 옆에는 손수레나 자전거가 늘어섰다. 한눈에 봐도 가난한 작은 산동네다. 아래에 대학도 있고 집들 모양을 보아하니 자취생이 많을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손바닥만한 원룸이 생각났다. 강북 오패산 자락의 그 집에 매달 25만 원이 들어간다. 서울 살면서 싼 편이다. 하지만 명륜동은 서울 시내다. 나보다 더 들 것이다. 그의 집은 “실력”이 있을까.
더 올라갈 길이 있나 싶을 때 뒤에서,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바로 위에 공터 나오는데 거기서 돌려 나가시면 돼요.” 했다. 그는 거의 산동네 끝에서 사는 모양이었다. 차를 세우자 그가 교통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윽고 결제음이 울렸다. 요금은 3천 원인데, 결제되고 나니 잔액이 2천 원이 안 됐다. “택시 잘 안 타는데….”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피곤하지 않았다면 걸어왔거나, 기다렸다 마을버스를 탔겠구나, 이 새벽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푹 쉬세요!” 하고 그를 보내려 했다. 그러자 그가, “쉬기는요. 잠깐 쉬었다 학교 가야하는데요. 안전 운전하세요.” 했다. 그는 그렇게 피곤한 인사를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날이 밝고 있었다. 그가 새벽 빛이 먼저 닿는 산꼭대기 집들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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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알바"에 늦어 내 택시를 탔던 그 학생들에게 쉬는 날은 돈 버는 날이었다. 방금 내린 내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잠자는 시간이 돈 버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주말 알바 학생은 그 돈을 학원비에 보태겠지만, 그는 어디에 보탤까. 잠 자지 않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괜찮을까. 등등 많은 물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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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학생들이 (심지어 적지 않은 중고등학생들도) “알바”를 한다. 압도적인 이유는 학비와 생활비다.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거의 700만 원이다(2016년). 학생들은 내 택시를 탔던 그 학생들처럼 등록금 말고도 학원비, 그 밖에 생활비, 혹시 월세라도 내면, 1년에 천만 원도 더 필요하다. 그 돈이 집에 없으면 은행에서 빌린다. 그래서 학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이 약 150만 명이나 된다. 대출액은 한 명당 평균 704만 원이다(2014년말 기준, 대학원생 포함). 우연이든 아니든, 평균 등록금과 비슷한 액수다! 한국에 대학생이 대략 300만 명이다. 대출받은 사람 150만 명 중 대학원 생, 졸업자 중 미취업자 등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빚을 지고 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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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으로 그 많은 대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공부할 시간을 줄이고, 새벽에, 평일 저녁에, 아니면 주말에 고깃집, 24시간 편의점, 카페 등등에서 일한다. 내 택시를 탔던 그 대학생들 처럼 말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한 사람은 방학, 아니면 휴학을 한다. 하는 일도 다양하다. 약물 생체 실험을 하는 “마루타 알바” 부터, 심지어 보이스피싱까지. 물론 사정이 급한 사람일 수록 더 어렵고 더 위험한 일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는 “도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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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져 있듯이, “알바생”들이 일하면서 받는 대우는 끔찍하다. 저임금, 산재 적용 회피, 임금 체불 등등. 어느 비 오는 일요일에 내 택시를 탄 학생이 있다. 지각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태릉 넘어 이제 막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안 고깃집에서 일했다. 주말 외에 평일에도 며칠씩 일했다. 계획은 등록비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직전에 받은 월급이 일한 것에 비해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하길래 나와 계산해 보았다. 최저 임금에 못 미쳤다. 우리는 “사장놈! 사장놈!” 하며 분노했다. 얼마전 “애슐리”라는 이랜드 외식 사업체가 4만4,360명에게 83억7200만원을 체불한 일이 드러났다. 피해자 대부분이 “알바생”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한사코 막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각종 공공 서비스에 대학생 자원 봉사자를 동원하며 이를 “스펙” 쌓기로 유도하고 있다. 복지에 인색한 정부가 대학생들의 노동은 “날”로 먹으려는 것이다. 동시에 기업과 정부는 학생 시절의 노동을 “경험”이다, “도전”이다 하고 고무한다. 얼마나 위선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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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업, 정부의 행동을 보면 분노가 인다. 그들이 청춘을 찬양하는 것은 역겹다. 하지만, 정작 “젊음”의 주인인 청년들은 어떤가! 2급 발암 물질이라는 심야 노동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가야 했던 그 여학생과 최저임금도 못 받고 등록금을 받던 고깃집의 청년, 피곤해 늦장 부리다 편의점 주말 알바에 택시를 타고 가던 그 학생들 말이다.
자꾸 새벽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가 걸린다. 그 학생은 밤을 새가며 힘들게 돈을 벌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택시를 타는 걸 미안해 했다. 그 미안함은 택시 기사에 대한 유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렵게 번 돈을 쓰기에 아까운 거리거나 또는 산꼭대기 위 집까지 걸어 올라갈 자신이 없었거나. 돈 3천 원에 그 많은 걸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의 고생을 도전과 경험으로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미래를 향한 꿈을 키우면서. 그래서 그의 “젊음”이 아름답다. 그 꿈이 무엇이든 응원하고 싶다. 그 젊음을 지켜주고 싶다. 그런데 그 응원의 방법이, 비싼 등록금과 체불 임금과 자원 봉사는 아니지 않는가? 저들은 “젊음”을 등쳐먹고 “꿈”을 짓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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