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동, 어느 비정규직 감정노동자의 꿈

by - 화요일, 2월 14, 2017

﹤이 글은 내가 택시 기사로 일했던, 2016년 이른 봄부터 늦 여름까지, 여섯 달 동안 실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택시라는 조건에서 대화는 한계가 많았고 그들의 삶의 내면까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구할 수 있는 정보들을 통해 내 손님의 모습을 스케치해보기로 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내가 태운 손님들의 모습을 닮은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글쓴이 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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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늦은 출근이었다. 아직 쌀쌀한 새벽이 귀찮아 뭉기적 댔던 것이다. 차를 끌고 나올 때는 이미 주변이 밝았다. 시간이 돈이나 다름없는 택시 기사에게 지각은 결국 자기 손해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월급제에 그날 태운 손님들의 운임 중 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가 성과로 인정되어 급여에 포함되는 제도다보니, 손님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울 수 있는 시간이 곧 돈인 것이다. 
강북 어디선가, 육중한 체구의 젊은 남성이 나를 불러세웠다. 이날 첫 손님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배가 산처럼 볼록한 게 어색했다. 최근에 갑자기 살이 많이 붙은 듯했다. 어떻게 봐도 과체중이었다. 차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니 의정부로 가자고 했다. 여태 술을 마시다 온 듯한데, 취하지는 않은 듯했다. 이런 그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우울함이 섞인 그의 말투와 푹푹 내쉬던 한숨 소리, 그리고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말한 그의 계획들이 여전히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는 슬쩍 봐도 애띠지만 얼굴에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뭐랄까 애어른 같은 느낌의, 종잡을 수 없는 30대 초반 남성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로 2년 계약이 끝나고 오늘로 실업자가 되었다. 관리자들은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았고, 사실 자신도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이 있어 보였다. “일 찾기가 쉽지 않을텐데 왜…” 하고 물었더니, “일이 너무 싫고 힘들어서” 하고 답했다. “어쨌든, 시원섭섭 하시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하고 말하니, “감사합니다”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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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관리자인 정규직들하고 마셨다. 그는 대기업 전자제품 회사의 지역 판매 대리점에서 비정규직(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했다. 주로 고객과 여성(비정규직) 직원 관리였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하는 일은 비슷한데,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대우나 조건은 달랐다고 한다. 그래도 관리자들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곳에서 계약 기간인 2년 동안 일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9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일하고 일요일 하루를 쉬었다. 그렇게 해서 연 3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 주 72시간을 일하는 장시간 강노동에 나는 속으로 소스라치고 있었다. 가만 보면 나도 비슷한데 말이다. 참 피곤하게 일했겠다 싶어 그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피로도 피로지만 일 역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만만치 않고, 여성 직원들을 다그쳐야 하는 일 역시 마음 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저녁 9시에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기는 커녕 이런 저런 이유로 회식을 하러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회식 자리는 결국 술 자리다. 하는 이야기도 결국 비슷한 일 이야기여서 가고 싶지 않지만 관리자들이 가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다. 
이런 환경 때문에 식습관조차 안 좋아져 2년 사이 30킬로그램이 불었다. 정확히 이 일을 하는 동안 불어난 몸무게다. 몸무게 증가와 운동 부족 등으로 급격히 몸도 안 좋아졌고, 간에 무리가 많이 갔다고 한다. 내게 말은 안했지만 어디가 이상이 있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호흡도 조금은빨라 보였는데 생활이 불편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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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 승객처럼 고객 서비스를 주요 업무로 하는 노동자들을 흔히 감정 노동자라고 한다.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가 감정적 소모가 많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고객 관련 문제는 그에게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마트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카페나 패스트 푸드점의 청년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다. 이들의 요구는 간명했다. 처우 개선이다. 여기에는 감정 노동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대책, 적절한 임금과 휴식, 불안정한 고용 관계 개선 또는 정규직화 등이 포함된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이제 사회적으로 정당함을 인정받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지배자들은 무시하거나 어정쩡한 타협을 끝도 없이 시도하며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린다. 경제 위기 탓,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 탓 등등. 
“감정 노동”이 사회 문제화된 것은 이른바 “갑질 고객” 덕분이었다. 괴팍하고 못된 고객이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 “고객”이 문제시 된 것이다. “갑질 고객”이 지탄을 받고, “손님은 왕이다!” 따위의 구멍 가게 성공담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된 듯하다.
하지만 이는 고용 관계에서 비롯된 근본적 문제를 엉뚱한 고객 탓으로 돌려버린 것에 지나지 않다.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 구조 같은 근본 원인이 업무의 낮은 성취감과 비효율성 등을 낳는다는 것을 무시한 채, 오로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들에게 무조건적인 “서비스”를 강요하며 이를 근무 태도에 반영하는 고용주들의 횡포가 노동자들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친절교육, CS, 모니터링, 인사고과 등을 강화하고 있으며 정작 고객의 횡포에 대하여는 메뉴얼이 없거나 참으라고만 하는 곳이 태반이다. 그러니, 일부 못된 고객의 태도가 자제된다고 해서 노동자의 “감정”이 치유될 일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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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이 젊은 노동자를 이해하려니 두 가지가 궁금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나 처우는 어떨까. 그리고 감정노동자들의 상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의 삶을 얼추 짐작하기 위해 통계를 보니 이렇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비정규직 노동통계를 보면(통계는 대략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뿐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같은 해 8월, 전체 임금 노동자 약 19,627,000명 중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6,444,000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2.8%였다. 이들의 임금은 같은 시기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보았을 때, 평균 53.5%, 즉 절반을 조금 넘는 임금을 받았다. 같은 시기 국민연금 가입률은 정규직이 82.9%일 때 비정규직은 36.3%, 고용보험은 정규직이 75.1%일 때 비정규직이 42.3%, 건강보험은 정규직이 86.2%일 때 비정규직이 44.8%였다. 퇴직금도 정규직의 85.5%가 받을 때 비정규직은 40.9%가 받았다. 그리고 정규직이 유급 휴가를 받는 비율이 74.3%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1.9%였다. 참으로, 매우 불평등하고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그는 일했을 듯하다.(이 통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차별과 억압을 더 받을 것임을 짐작하게 해주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과 억압 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 양보론 따위에 내 공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밝힌다.) 
그의 작업 환경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3년 9월 설문 조사 보고서를 보면, 감정 노동자들이 많은 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같은 서비스 산업 중에서도 사회 서비스(병원 간병사나 간호사, 병원의 교환), 개인 서비스(호텔 객실, 카지노 딜러), 생산자 서비스(은행 텔러나 콜센터 상담사), 유통 서비스(백화점이나 면세점 판매직, 유통 고객 서비스직) 순으로 직무 스트레스가 심하며, ( ) 안에 써넣은 직종은 특히 심한 편이다.(이들이 모두 비정규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유통 고객서비스직은 90.7%가 “내 일은 고객을 위해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라는 문항에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 하고 대답한 직종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사태 확대를 방지하는 차원의 매뉴얼 정도를 가지고 있을 뿐, 대부분 본질적 규제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반해 작업장의 통제는 심각해, 심한 경우 이른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처럼 고객을 가장한 평가자를 일터로 위장해 보내는 모니터링 제도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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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환경은 당연히 감정 노동자의 건강도 해친다. 노동환경건강을 다뤄온 한 전문가는, 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제조업과 같은 안전 문제는 덜하지만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 등에 노출되며, 특히 정신과적 질환에 많이 노출된다고 말한다. 감정노동 상태에 노출되면, 감정의 부조화와 낮은 직무 만족도, 높은 직무 스트레스를 느끼고, 정신적 고갈 상태에 빠져 우울증, 공황장애, 적응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도박, 약물 중독, 심지어는 더 극단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수행한 한 조사를 소개했다. 
2009년에 실시된 이 조사는 약 3천 명 정도를 설문 조사 후 위험집단을 1차 분류해, 이 중 고위험 집단에 대하여는 정신과적 검사와 진단을 수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전체 건강이나 다른 산업에 비교해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흡연과 음주량이 월등히 높았으며, 거꾸로 운동은 덜 한다. 또한 설문 응답자의 80% 이상이 자신의 감정과 상관 없이 늘 웃어야 했으며 일하는 시간도 길었다.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정신과적 진단 결과 역시, 같은 설문지로 정신 건강 수준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이나 직군에게 얻은 결과와 비교해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욕설, 폭행, 성희롱 등의 경험도 다른 집단에 비해 높고, 이에 의한 우울증을 보이는 경우도 더 많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해는 지하철, 철도 기관사처럼 인명 사고를 경험해야 하는 직종의 수치와 유사할 정도로 심각한 사례들이 많았다. 
직종이나 업무의 차이, 그리고 개인적 차이를 무시하면 감정 노동으로 일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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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나 조사는 대략의 경향을 나타낸 것이어서 개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일반화하기 힘든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면서 감정 노동이라는 업무의 특성 상 더욱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내가 태운 승객은 아마도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을까. 그의 우울한 목소리와 한숨이 자꾸 생각나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 승객이 내린 곳은 의정부의 부대찌게 거리에 가기 전, 어느 오피스텔 건물 앞이었다. “사무실 같아 보이는데…” 하고 말했더니, 원룸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혼자 사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그의 건강이 2년 새 그렇게 나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일하며 아마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차별 받았지만, 그래도 관리자들이 잘 대해주었다고 믿었던 이 순박한 청년은, 지난 2년 동안, 묵묵히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일만 했겠구나.
그가 “다 와갑니다” 하며 마지막에 했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일 그만두었으니까, 이제 시간 좀 내서 살 빼는 운동도 시작하고, 일본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일본 여행도 갈 겁니다. 제가 노래 좋아하거든요, 노래도 부르고 싶어요.” 이 일이 끝나기를 얼마나 바랐던 것일까. 
희망에 찬 그 청년이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의 희망을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2년 동안 일해서 얻은 것, 말하자면 세상이 그에게 준 교훈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더 컸다. 어쩌면 그가 얻은 교훈은,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나면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다 정작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에 불길하다. 다른 무엇보다 그가 건강해져 있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김종진. 서비스산업 감정노동 대응과 규제방안. 월간노동리뷰. 2013년 9월호 pp. 42-54.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2016 KLI 비정규직 노동통계.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문제와 대책 토론회 자료집.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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